[커버스토리]‘BBK 실소유주’ 고난도 미로찾기

‘한글 이면계약서’진위여부 주목…
국민들, 검찰 입만 바라봐

김경준씨의 어머니 김경애씨가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있다.

국민들은 연일 보도되는 BBK 관련 기사를 접하면서도 이 사건의 실체가 어떤 흐름으로 연결돼 있는지 잘 알 수가 없다. 왜 BBK의 실소유주 문제가 공방의 대상이 되며 이 후보와 김경준씨의 주가 조작 혐의와 관련이 있는지, 마치 미로의 출구를 찾는 고난도 수학게임처럼 보이기도 한다.

BBK 사건의 주인공 투자자문사 BBK는 1994년 4월 설립됐다. 금융감독원에 등록한 시점은 그해 11월이다. 투자자문업 등록을 하면서 동시에 MAF라는 이름의 역외펀드를 만들어 국내 투자자들의 자금 645억 원을 끌어들였다. 실적이 그리 좋지 못했던지 투자 유치금을 제때 돌려주지 못했고 알려진 대로 2001년 4월 BBK투자자문은 문서 위·변조로 투자자문업 등록을 취소당했다.

BBK투자자문 2001년 등록취소

BBK가 등록 취소되자 김씨는 2001년 4월 역외펀드 MAF의 자금을 일부 동원, 국내 코스닥 상장 창업투자 회사인 뉴비전캐피탈(주)을 인수한 뒤 상호를 (주)옵셔널벤처스코리아로 바꾸고 대표로 취임했다. 최근 김씨의 누나 에리카 김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옵셔널벤처스코리아를 인수한 것도 이 후보가 지시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김씨의 대표적인 범죄 혐의로 계속 거론된 옵셔널벤처스코리아의 주가조작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2002년 4월 금감원은 외국인들의 투자를 받았다는 소문을 퍼뜨려 주가를 400%까지 끌어올렸다는 혐의로 옵셔널벤처스코리아를 검찰에 고발한다.

이 사건과 관련한 소액 투자자는 모두 5200여 명, 총 600억 원대의 손실이 발생했다. 김씨는 검찰에 고발되기 5개월 전인 2001년 12월 미국으로 도피했고, 그 과정에서 옵셔널벤처스코리아 자금 384억 원을 횡령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런 혐의에 대해 김씨는 이명박 후보가 주도한 것이라고 부인하고 있으며, 이 후보 측은 김씨의 책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까지가 BBK 사건의 핵심 흐름도다.

BBK 실소유주 문제가 공방의 핵심인 이유는 전체 주가조작의 흐름을 이해해야 풀린다. 국민들은 각기 2개의 다른 흐름 속에서 주가가 조작되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생소한 편이다. 주가 조작은 옵셔널뱅크코리아를 설립하기 이전인 2001년 4월 전부터, 정확히는 2000년 12월부터 2002년 1월까지 무려 1년 이상 계속해온 것으로 이미 드러나 있다.

문제는 주가 조작에 동원된 계좌의 줄기가 2개라는 사실이다. 하나는 ‘BBK 계좌’이고 나머지 하나는 ‘LKe뱅크 계좌’다. 현재까지 ‘LKe뱅크 계좌’를 이용한 김씨의 옵셔널벤처스코리아 주가 조작은 비교적 논점이 선명하다. 이 후보 측은 ‘LKe뱅크 계좌’를 이용한 옵셔널벤처스코리아의 주가 조작은 자신과 김씨가 결별한 후 김씨의 단독 범행이라는 점을 강조해왔다.

LKe뱅크와 달리 BBK투자자문을 둘러싼 주가조작은 더 폭발력이 크다. 바로 이 대목이 왜 BBK의 실소유주 문제가 이번 진위공방의 핵심인지 말해준다. 한 마디로 BBK는 파행적인 자금운용과 주가조작, 자금세탁의 비밀통로 역할을 했다. 우선 BBK는 조세회피 지역에 역외펀드인 MAF를 설립한 통로로 지목되고 있다.

미국에 설립한 페이퍼컴퍼니(서류상 회사) ‘AM파파스’가 BBK와 연결돼 돈세탁 고리로 이어졌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간 이 후보가 BBK와의 관련성을 강하게 부인한 것도 이 같은 폭발력과 인화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김씨의 주장대로 이 후보가 BBK의 실소유주였거나, 이면계약을 통해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이 후보는 BBK 계좌를 통한 주가 조작 의혹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실소유주가 뭉칫돈의 흐름을 전혀 몰랐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11월 23일 김씨의 모친이 검찰에 제출한 소위 ‘한글 이면계약서’의 진위 여부는 그래서 주목을 받고 있다. 김씨 측이 공개한 ‘주식매매계약서’라는 제목의 한글계약서는 우선 매도인(을)을 이명박, 매수인(갑)을 LKe뱅크 대표이사 김경준으로 하고 있다. 계약서는 이어 “본 계약은 갑과 을 간에 을이 보유한 BBK 투자자문의 주식 61만 주의 매수, 매도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계약을 체결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소액투자자 5200명 600억대 손실

이 같은 계약서의 내용대로라면 이 후보가 BBK의 주식을 거의 전량 보유했음을 의미한다. 계약서에 주식 61만 주의 매도 금액은 49억9999만5000원으로 명시돼 있다. 김씨측은 이 후보 본인이 BBK 소유주라는 것을 증명하는 계약서라는 점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김씨 측의 주장은 아직 확인해야 할 몇 가지 단계가 남아 있다. 우선 문서 자체의 진위 여부, 사용한 인감의 위조 여부다. 이 후보 측은 이 계약서에 사용한 도장이 그 무렵 이 후보가 사용한 어떤 도장과도 일치하지 않음을 주장하고 있다.
더 결정적인 것은 김씨가 스스로 남대문세무소에 신고한 ‘주식 등 변동상황명세서’의 내용이다. 이 명세서를 보면 2000년 5월 9일 이전까지는 홍종국씨가 대표였던 이캐피탈이 BBK 전체 주식의 98.36%인 60만 주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 후보 측은 “이 후보는 당시 BBK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고, 따라서 매도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홍씨 또한 김씨의 측근이라는 것이 이 후보 측의 주장이다.

그러나 사실관계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BBK는 1999년 9월 28일 정식으로 투자자문업 등록을 신청하면서 홍종국씨의 이캐피탈이 30억 원을 자본금으로 댔다. 그러나 이캐피탈은 두어 달 만에 주식 대부분을 ‘BBK Capital Partners Ltd.’에 매각했다.
이캐피탈 홍종국 사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처음에는 김경준 씨의 명성을 듣고 투자를 결심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실망스러워 15억 원씩 두 차례에 걸쳐 투자금을 회수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때 주식을 사간 사람은 BBK 대표이사였던 김경준 씨를 지목하고 있다. 한글계약서에 적힌 거래일자는 2000년 2월 21로 돼 있다. BBK가 이캐피탈로부터 인수한 주식이 어떤 경로로 이 후보의 소유가 되었는지, 홍씨와 이 후보, 김씨 간의 관계 규명이 의혹을 풀기 위해 넘어야 할 또 다른 산이다.

김씨 측이 제시한 한글계약서 1건과 영문 계약서 3건의 내용이 사실로 드러나 김씨 측 주장을 뒷받침한다면 김씨와의 동업 과정에서 이 후보의 역할과 지위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한글계약서와 영문계약서를 종합하면 이 후보 소유의 LKe뱅크에 이 후보가 소유한 BBK 주식이 매도됐고 100억 원을 매개로 한 순환매매를 통해 이 후보의 LKe뱅크가 e뱅크증권중개와 BBK를 소유한다는 내용이 밝혀진다는 것이 김씨 측의 주장이다. 사실상 하나의 지주회사 밑에 관련 회사들을 묶어두고, 이들 회사 전체를 이 후보가 소유했다는 이 ‘엄청난 주장’은 이명박 후보의 주가조작 연루 의혹의 최대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기홍 편집위원 glutton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