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론스타, 한국정부에 ‘선제공격’

국제중재 앞둔 냉각기간에 ‘투자자-국가소송 의향서’ 전격공개

“론스타가 한국 정부에 보낸 서면통지가 한국에서 특별히 언론 보도의 주제로 계속 나오고 있다. 이 가운데 일부는 부정확하고 불완전한 내용이다. 투명성을 위해 통지 내용 전문을 공개한다.”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가 지난 5일 기업뉴스 통신사인 ‘비즈니스와이어’를 통해 한국 정부에 보낸 투자자-국가소송(ISD) 의향서를 전격 공개했다.

7월 24일 민변 외교통상위원장 송기호 변호사(가운데)가 서울행정법원에 “론스타가 지난 5월 한국 정부에 보낸 ‘투자자-국가소송(ISD) 중재의향서’를 공개하라”는 정보공개 청구소송 서류를 내고 있다. | 연합뉴스

론스타가 공세적으로 중재의향서를 온라인에 공개하면서 ‘론스타 vs 한국 정부’의 전쟁이 2라운드에 접어들고 있다. 양측은 최근 법률 대리인에 대한 선임을 마무리하는 등 본격적인 소송전 준비에 돌입했다. 한국 정부는 법무법인 태평양과 미국의 ‘아널드앤드포터(Arnold & Porter)’를 선임했고, 론스타는 법무법인 세종과 미국계 다국적 로펌 ‘시들리-오스틴(Sidley Austin LLP)’을 선임했다. 대상 금액이 수조원에 달하는 국제중재에서 창과 방패가 될 로펌의 진용이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한국정부는 그동안 공개요구 거절
지난 5월 한국 정부에 중재의향서를 보낸 론스타는 냉각기간인 6개월이 지난 뒤에도 평화적으로 분쟁이 해결되지 않으면 오는 11월 한국 정부를 국제중재법정에 세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제중재를 앞둔 냉각기간에 선제공격을 한 것은 론스타였다. 론스타는 시민단체의 공개 요구에도 불구하고 “국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며 한국 정부가 비공개해온 중재의향서를 온라인에 스스럼없이 공개해버렸다. 중재의향서는 2쪽의 공식 서한과 19쪽의 부속문서(memorandum)로 구성돼 있다. 서한의 수신자는 법무부 장관이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이었고, 김승호 주벨기에·유럽연합(EU) 공사와 김대기 청와대 경제수석도 서한의 참조인으로 적혀 있다.

외교통상부는 “협의요청서의 구체적 내용은 이를 공개할 경우 정부의 전략이 노출돼 향후 분쟁해결 절차에서 우리나라에 불리하게 작용될 수 있는 등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며 비공개 입장을 견지해왔다. 금융위원회도 “론스타의 일방적인 입장이 담겨 있는 문서이기 때문에 언론, 국회 등이 해당 내용을 알게 되고 논란이 되면 정부 입장을 밝혀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정부가 답을 하는 과정에서 정부 논리가 드러나게 돼 론스타에만 유리하다”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의 정보공개 청구에 응하지 않았다.

론스타가 지난 5일 기업뉴스 통신사인 ‘비즈니스와이어’를 통해 전격 공개한 중재의향서의 첫 번째 페이지 상단부. 수신자가 이명박 대통령으로 명시돼 있다.

하지만 론스타의 ‘선공’으로 금융위와 외교부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꼴이 됐다. 금융위는 지난 5월에도 론스타로부터 이미 뒤통수를 맞은 적이 있었다. 금융위는 부처님오신날인 지난 5월 28일 예정에 없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보도자료를 보면 “론스타가 한국 정부에 협의를 요청하는 문서를 전달했다”는 내용만 있을 뿐 투자자-국가소송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론스타가 한·벨기에 투자보장협정에 따라 한국 정부를 국제중재에 회부하기 위한 첫 번째 공식 조치를 취한 것이지만 금융위는 ‘협의 요청’이라는 표현만을 내놓아 그 의미를 축소하려 한 것으로 풀이된다.

론스타는 이틀 뒤 한국어로 번역까지 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론스타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 문서의 무게중심은 협의 요청이 아니라 투자자-국가소송에 있다는 점을 못박았다.

미국, 캐나다 등은 중재의향서가 접수되면 국민들이 알 수 있도록 이 의향서를 공개하고 있다. 한·미 FTA 11.21조(중재절차의 투명성)도 “중재의향서를 받은 다음에는 대중에게 이용 가능하게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벨기에 투자보장협정에는 이 조항이 포함돼 있진 않지만 중재절차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중재의향서를 대중에 공개하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다. 옹색한 변명으로 중재의향서를 공개하지 않으려던 정부는 국내 여론의 흐름을 주시하며 여론전을 펼치려던 론스타에 되레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론스타가 공개한 중재의향서를 살펴보면 그간 언론을 통해 보도된 내용과 크게 다르진 않다. 금융위의 외환은행 지분매각 승인 지연으로 제값에 지분을 팔지 못해 손해를 입었고, 국세청의 과세처분이 부당하다는 것이다.

한국정부에 요구 배상액 수십억유로
하지만 새롭게 확인된 사실들도 적지 않아 국제중재에서 다뤄질 쟁점들을 비교적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우선 론스타가 한국 정부에 요구하는 손해배상액의 규모가 수십억 유로에 이른다는 점이다. 현재 10억 유로는 1조4000억원에 이른다. 다음으로 영국계 글로벌은행인 HSBC, KB국민은행과의 인수협상 실패 이외에 싱가포르 DBS은행에 대한 지분매각도 실패했고, 2007년 13.6%의 지분을 시장에서 일괄매각(block sale)했을 때 시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팔아 손해를 입었다는 주장 등도 담겨 있다.

벨기에가 론스타에 대한 국세청의 과세 방침에 항의해 2007년 8월 8일 한국 정부에 한·벨기에 투자보장협정에 따른 상호 협의 절차 진행을 요구했다는 점도 새롭게 밝혀졌다. 론스타는 특히 중재의향서에서 론스타가 임명한 이사들에 대한 영장 청구가 기각되자 대검찰청이 2006년 11월 6일 이례적으로 이 기각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메일을 수천명의 언론인, 학자, 변호사들에게 보낸 것 등을 사례로 들며 ‘가혹한 취급’을 당했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론스타의 중재의향서 공개와 관련해 성명서를 내고 “론스타는 감독당국이 자신을 ‘산업자본이 아닌 자’로 인정했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특히 대주주 적격성 심사 과정에서 일본 내 골프장인 PGM홀딩스를 의도적으로 누락시킨 잘못에 대해서도 일언반구 언급이 없다”고 꼬집었다. 의향서에 나타난 론스타의 주장은 사실의 누락과 왜곡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 문제를 피해가려는 정부의 대응 태도 또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론스타의 산업자본 판정을 고의든 실수든 제대로 해내지 못한 금융당국의 책임을 무조건 덮으려는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며 “금융당국은 이제라도 론스타와 주고받은 서신 등 관련 자료 일체를 공개하고, 론스타의 비금융주력자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정공법으로 론스타에 대응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수조원에 달하는 ‘국제중재 대전(大戰)’은 오는 11월 론스타의 뜻에 따라 개시 여부가 결정된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의 공언처럼 “(승소를) 120% 확신”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만약 패소할 경우 수조원에 달하는 국민세금이 론스타의 호주머니로 들어가게 된다.

<김지환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bald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