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한·중수교 20년, 중국을 말하다]“한국에 대한 중국의 직접적 위협은 없다”

<용과 춤을 추자> 펴낸 조영남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지난해 6월 17일,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 영국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 미국 저널리스트 파리드 자카리아, 중국 칭화대 교수 데이비드 리 등 쟁쟁한 지식인 네 사람이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멍크 디베이트’에 참석했다. 이날 토론회의 주제가 시사적이다. 중국은 21세기의 패권국가가 될 것인가? 다분히 선정적인 주제이긴 하다. 그러나 그것이 개혁·개방 30년 만에 급부상한 중국을 바라보는 서구의 당혹스러운 시선을 반영한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올해 출간된 중국 관련 번역서들에서도 비슷한 시선이 읽힌다. <시진핑 시대의 중국: 중국은 과연 세계의 지배자가 될까>(사토 마사루), <제국의 전쟁: 중국 vs 미국, 누가 세계를 지배할 것인가>(프랑수아 랑글레), <패권 경쟁: 중국과 미국 누가 아시아를 지배할 것인가>(애런 프리드버그) 등 미국·프랑스·일본 등 기존 강대국 출신 저자들이 쓴 책들은 중국의 부상을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서구 패권에 대한 강력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조영남 교수(서울대 국제대학원) | 경향신문

그렇다면 중국의 부상을 바라보는 한국의 시선은 무엇일까. <주간경향>은 한·중수교 20주년(8월 24일)을 맞아 최근 중국 관련 책을 펴낸 한국인 저자들을 만났다. <용과 춤을 추자>를 펴낸 조영남 교수(서울대 국제대학원)와 <제국의 부활>을 펴낸 소준섭 박사(국회도서관 조사관)다. 조영남 교수는 중국이 세계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19세기 영국이나 20세기 미국과는 달리 ‘불완전한 강대국’이 될 것이며, 아시아에서도 중국이 주도하는 ‘신중화질서’가 등장할 가능성은 없다고 봤다. 반면 소준섭 박사는 중국이 미국과 대등한, 또는 미국을 넘어서는 강대국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미국의 시각이 아닌 한국의 주체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 중국 위협론의 실체적 근거가 허약하다는 점, 내부 문제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체제 안정성은 상당히 견고하다는 점에서는 두 사람의 견해가 일치했다. <편집자 주>

한·중수교 이후 20년 동안 달라진 중국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중 하나는 미국이 중국을 자국과 함께 ‘G2’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이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무엇인가.
“일부 언론과 학자들이 편의적으로 쓰는 용어일 뿐이다. 미국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G2라는 용어를 쓴 적이 없다.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미국이 중국을 동등한 파트너로 인정할 경우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서 핵심 파트너인 일본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생긴다. 다른 하나는 미국 보수파들이 중국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독재국가를 G2로 인정할 수는 없다는 논리다. 중국은 G2라는 규정을 거부한다. 중국이 보기에 G2라는 말은 중국에 감당하기 힘든 책임을 지우려는 일종의 립서비스일 뿐이다.”

아시아에 중국 주도의 신중화질서가 구축될 가능성은 있나.
“미국이나 유럽 학자들이 그렇게 말하는데, 불가능하다고 본다. 200년 전 중국이 중화질서를 구축했던 이유는 경제력, 군사력, 소프트파워(정치이념·정책·문화)에서의 절대적 우세 때문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경제력에서는 국내총생산(GDP)은 커지겠지만 1인당 GDP로는 미국에 열세다. 군사력에서는 미국과 비슷한 수준까지 갈 수 있을지는 몰라도 미국을 넘어설 수는 없다. 소프트파워 측면에서는 더더욱 상대가 안 된다. 또한 신중화질서의 핵심은 압도적 군사력을 바탕으로 아시아 국가들에 중국이 일종의 호혜를 베푸는 것인데, 중국은 내부 문제가 심각해서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게다가 아시아에는 이미 중국 말고 일본, 러시아, 인도 등 지역 강대국들도 많다. 신중화질서는 일부 학자들의 상업주의적 발상일 뿐이다. 한국에서는 주로 보수파들이 그런 말을 한다.”

2004년 이후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북·중간 경제교류 강화 등을 근거로 북한이 중국의 속국이 될 우려가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럴 가능성이 있는지를 보려면 그것이 중국에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를 따져보면 된다. 중국이 북한을 영토적으로 점령했을 때 무슨 이익이 있을까. 그렇게 되면 주한미군, 주일미군과 완충지대 없이 맞닥뜨리게 된다. 군사안보적 이익이 없다. 경제적으로는 어떤가. 자원은 세계 최대 외환보유액을 동원해서 사면 된다. 노동력은 이미 풍부하다. 시장의 크기도 비교할 수 없다. 정치적으로도 소득이 없는데, 중국은 중국 위협론이 확산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중국이 북한을 점령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냉전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향후 중국이 민주주의 체제로 이행할 가능성은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소련 붕괴 이후 많은 국가들이 민주화됐지만 무늬만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들이 대부분이다. 러시아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중국은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다. 중국은 민주주의가 대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경제력이 상승하면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커질 것이라는 생각도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한국이 민주주의로 이행할 때 국민소득이 3500달러 수준이었다. 중국의 경우 상하이, 베이징, 톈진 같은 곳은 1만달러가 넘은 지 3∼4년이 됐다. 그런데도 민주화에 대한 요구는 없다.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는 경제발전과 상관없이 일어난다. 사회적 문제가 현 체제로는 해결이 안 될 때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강해지는데, 이런 면에서 중국에는 민주화의 기본동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공산당에 대한 지지가 아주 높다. 여론을 동원하거나 조작해서 그런 게 아니다. 중국은 지난 30년 동안 매년 10% 가까운 성장을 하고 국제적으로 지위가 엄청나게 상승했다. 그런데 어떻게 현 체제에 대한 불만을 갖겠나.”

중국이 체제 내부의 문제로 크게 흔들릴 가능성은 없나.
“정치발전과 경제발전을 달리 봐야 한다. 정치발전이라고 하면 흔히 민주화를 생각하지만, 정치민주화의 길과 정치제도화의 길은 다르다. 정치제도화라는 것은 한 정치체제가 정치재를 공급할 수 있도록 발전하는 것이다. 여기서 정치재란 안정, 질서, 복리 같은 것들이다. 이집트는 민주화는 됐지만 제도화가 안 된 상태다. 중국은 1990년대부터 정치제도화 전략을 취했다. 민주화 측면에서는 후진적이지만 제도화 측면에서는 발전했다. 단순히 공산당 일당독재 국가라는 시각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이런 점에서 중국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중국이 당면하고 있는 내부적 문제는 무엇인가.
“중국이 정치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제도화 중심 전략에서 생기는 문제들이다. 첫째 권력집중과 부패의 문제다. 제도화라는 건 정치재 공급을 위해 제도를 합리화하는 것인데, 독재의 문제가 발생한다. 중국이 모델로 삼고 있는 싱가포르를 보면 알 수 있다. 싱가포르는 인구가 적고 영국식 정치규범을 받아들인 나라여서 해결할 수 있는데, 중국은 안 된다. 그래서 국가권력을 개인재산으로 만드는 부패의 문제가 발생한다. 다른 하나도 역시 정치제도화 중심 전략에서 생기는 것으로, 정치적 권리의 억압이라는 문제다. 제도화 전략에서는 합리화를 추구하지 민주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정치 엘리트가 결정했으니 국민들은 그냥 따르라는 거다. 그래서 거리의 정치가 나타난다. 중국에서는 최근 5인 이상이 참여하는 집단소요 사건이 하루 500건씩 발생하고 있다. 시진핑 체제가 부패문제는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정치참여를 허용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정치 엘리트들의 기득권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중국을 보는 시각에는 기본적으로 중국이 한국에 위협이 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 같다.
“중요한 건 위협 그 자체가 아니다. 어떤 위협인가를 봐야 한다. 한국에 대한 중국의 위협은 첫째, 수동적 위협이다. 동일한 지역에서 한 나라가 부상하면서 느끼게 되는 자연스러운 위협이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 사이에는 중국이 한국을 군사적으로 위협할 계기나 사건이 없다. 한국은 영토문제로 중국과 다투고 있는 일본이나, 중국과 전쟁을 두 차례나 치른 베트남과 다르다. 이것은 객관적 위협이 아니라 역사적 경험에 의해 증폭된 위협이다. 중국의 위협은 둘째, 북한과 중국을 통해 매개된 위협이다. 한국을 위협하는 북한을 중국이 감싸고 있고, 동맹국인 미국과 중국이 대립하고 있기 때문에 생긴 위협이다. 그러나 직접적·적극적 위협은 아니다. 직접적 위협이 된다고 보는 건 미국적 관점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중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이명박 정부가 중국을 직접적으로 무시한 적은 없다. 그러나 한·미동맹을 우선하는 정책을 펴면서 중국과 긴장도가 높아졌다. 미국의 아시아 정책의 기본방향이 중국을 견제하는 정책이기 때문에 한·미동맹을 우선하는 정책은 결국 중국의 이익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 그리고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과의 역학관계를 모두 고려하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