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종교가 노동문제에 뛰어든 까닭은]거리로 나온 사제들

쌍용·콜트 정리해고, 제주 해군기지 건설 등 갈등 현장에서 미사 여는 신부들

예수는 성전에서 가르침을 설파한 적이 없다. 그는 늘 거리에 있었다. 그의 가르침과 행적을 따르려는 오늘날의 사제들도 그러하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하 ‘사제단’)은 지난 7월 2일부터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분향소가 차려져 있는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인도에서 매주 월요일마다 ‘월요미사’를 열고 있다. ‘거리의 미사’는 서울에만 있는 게 아니다. 경기도 부평시에서는 매월 셋째주 목요일에 악기제조업체 콜트의 노동자 정리해고를 비판하는 미사가 열린다. 강원도 삼척시에서는 매주 수요일 삼척핵발전소 유치 반대 미사가 열린다. 경남 밀양시에서는 매주 금요일 송전탑 공사 중단을 요구하는 천주교생명평화 미사가 있다. 제주 강정마을에서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 중단을 요구하는 미사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날마다 이어진다. 사제들은 권력과 자본이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위기의 현장이라면 어디든 가서 미사를 연다. 모두가 짧아도 6개월, 길게는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미사들이다. 사제단 김인국 신부의 말처럼 “지금은 거리 미사의 시대”다.

7월 23일 오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월요 미사를 열고 있다. | 김석구 기자

2006년 대추리 투쟁 계기로 활동 재개
1974년 유신독재에 저항하며 탄생한 사제단은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 투쟁의 정신적 버팀목이었다. 민주화 이후 성당 안으로 돌아갔던 사제단은 2006년 대추리 투쟁을 계기로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2008년 여름 촛불집회 당시 서울광장에서 시국미사를 연 이후 사제단 신부들의 거리 미사는 4년 내내 지속되고 있다. 용산참사, 쌍용차와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제주 해군기지 건설 강행, 밀양 송전탑 건설, 원전 건설 등 민감한 사회적 이슈들이 끊임없이 터져나온 탓이다. 사제단은 2010년 11월부터 2011년 11월까지 1년 동안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월요 시국기도회를 열었다. 올해 상반기에는 서울부터 제주까지 사회적 갈등과 분쟁의 현장을 찾아 월요 순례 미사를 열었다.

“그동안 여기저기 아픔이 있는 곳, 사람들이 울고 있는 곳을 찾아가 같이 울고 같이 아파하고 같이 기도했는데, 그렇게만 할 수가 없겠더라. 너무나 많은 곳에서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이미 알고 있지만 강정이든 밀양이든 평택이든 다 가볼 수 없는 이들이 함께 기도할 수 있는 곳에서 미사를 열기로 했다.” 전국을 찾는 월요 순례를 7월부터 대한문 앞 월요 미사로 바꾼 데 대한 김인국 신부의 설명이다.

현재 전국의 거리 미사는 가톨릭 정의평화위원회, 사제단, 천주교연대의 이름으로 진행된다. 정의평화위원회는 가톨릭 주교회의의 직속기구다. 사제단은 잘 알려져 있듯 뜻을 같이하는 신부들의 비공식적인 자발적 결사체다. 천주교연대는 전국 15개 교구 정의평화위원회와 천주교 인권위원회 등 천주교 단체들이 특정 활동을 위해 결합한 연대체다. ‘제주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천주교 연대’ ‘4대강 사업 저지 천주교 연대’ ‘동해안 탈핵 천주교 연대’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현실참여의 필요성과 방식에 대해서는 천주교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입장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교회가 사회적 현안에 대해 발언하고 세상의 부조리에 행동으로 맞서야 한다는 것은 개인의 판단을 넘어선 천주교의 공식적 입장이다. 로마 교황청은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마치면서 ‘교회는 교회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요지의 16개 문헌을 발표했다. 김인국 신부는 “바티칸 공의회는 담장 안의 교회가 빗장을 열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라는 결정이었다. 그 결정을 성경과 교회의 전통에 기반해 요약하고 있는 것이 ‘가톨릭 사회교리서’인데, 이 두꺼운 책은 세상의 문제를 끌어안으라는 교회의 임무를 풍부하고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제들이 개인적으로 현실 참여에 소극적일 수는 있어도 다른 사제들의 현실 참여를 비판하는 것은 교회의 믿음에 배치되는 행동인 셈이다.

“위협받는 약자의 안전, 사제가 나서야”
거리의 사제들에게 거리 미사란 이처럼 교회의 믿음을 따르는 일이자 시대가 교회에 요구하고 있는 불가피한 소명을 따르는 일이기도 하다. 1년 넘게 부평 콜트 공장 앞에서 거리 미사를 열고 있는 장동훈 신부(인천교구·노동 사목)는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곧바로 용산참사 현장을 찾았다. “사회 사목에 종사하는 사제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우리 시대는 빈곤층만이 아니라 평범한 중산층조차 생계 기반을 빼앗기는 불안정한 세상, 돈이 권력이 되면서 돈으로 환산해서 남는 게 없는 모든 것이 버려지는 세상”이라며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세상은 하느님이 바라는 세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 하나쯤은 말해야 한다. 그것이 거리 미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2월부터 밀양에서 송전탑 건설 반대 미사를 하는 김준한 신부(부산교구·밀양 예림성당)는 “피해 당사자들의 힘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의 균형이 일방적으로 권력과 자본에 쏠려 있다. 이처럼 상황이 비정상적이다보니 각 교구의 신부들은 물러설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정현 신부, 이영찬 신부와 함께 제주 강정마을을 지키는 김성환 신부(예수회)는 “환경과 생태가 훼손되고 마을공동체가 부서지고 있다. 여러 신부님들이 다치고 소송까지 당했지만 사제들이 당연히 져야 할 십자가”라고 말했다. 삼척 원전 유치 반대 미사를 하는 박홍표 신부(원주교구 도계성당)는 “예수님이 세상을 구원하러 왔는데 구원의 대상 중 가장 중요한 게 인간이다. 기득권층이 약자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때 누가 도와줄 수 있나. 사제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인국 신부는 “박정희 시절 이래 사제들이 이렇게 많이 거리로 쏟아져나온 적이 없다. 지금은 경제독재의 시대다. 군사독재와 달리 경제독재는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그런데 독재에 저항해야 할 그룹들이 전반적으로 자본에 포섭이 됐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세상이 이 꼴이 된 것은 교회의 책임”이라며 교회의 자성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제들이 모범으로 따르는 예수가 다시 이 세상에 온다면 그는 깔끔하게 지어진 성당으로 갈까, 아니면 갈등과 아픔이 있는 거리로 갈까.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인 강우일 주교(제주교구장)는 지난 4월 부활절 기간에 한 미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 5년 동안 강정문제를 다루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오늘 예수님이 오시면, 어느 쪽 미사를 더 즐겨 받으실까? 우리가 믿고 사랑하고 희망해온 예수님은 분명 길바닥에 모인 이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고 먼저 찾아가실 것이라는 소리가 제 영혼 속에서 들려왔습니다. 아파하는 이들과 함께 아파하고 슬퍼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미사야말로 십자가에서 봉헌되신 예수님의 단 한 번 제사와 가장 닮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