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해외 투기자본에 농락당한 토종기업들

베인캐피털은 센싸타를 인수한 2006년부터 5년간 한국에서 840억원 이상의 순이익을 올렸다. 센싸타코리아 노사는 현재 고용 안정을 논의하고 있지만, 생산설비를 중국으로 이전시킨다는 방침만큼은 변함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 충북 진천에 있는 센싸타코리아 공장 역시 미국, 일본 등 해외에 있던 설비를 빼내와서 만든 것이다.

자본의 ‘먹튀’ 방식은 다양하다. 센싸타코리아에서처럼 더 많은 이윤을 위해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기도 하고, 현지 경영은 도외시한 채 로열티와 배당금을 본사에 보내는 데 급급한 경우도 있다.

르노삼성차 노동자가 완성차를 점검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7년 외환위기 직후 들어온 투기자본은 주로 단기간에 기업가치를 높인 뒤 비싼 값에 되파는 전략을 사용했다. 1998년 취임한 김대중 대통령은 부족한 외환보유액을 채우기 위해 해외자본을 적극적으로 유치했다. 김 전 대통령은 대표적 투기자본가인 조지 소로스를 직접 만나 국내 투자를 부탁하기도 했다. 소로스는 “선진 금융기법을 전수하겠다”며 1999년 서울증권을 인수했다. 하지만 소로스는 서울증권 인수 이후 사옥 매각, 지분 매각을 통해 900여억원의 차익을 남긴 채 한국을 떠났다.

한라그룹의 계열사인 만도기계는 1999년 JP모건이 주력인 투기자본 선세이지에 넘어갔다. 선세이지는 만도기계에 6000억원가량을 투자했지만, 이 중 4000억원은 은행 차입금이었다. 선세이지는 2002년부터 배당 등으로 3000억원을 회수했고, 2009년에는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에게 만도 지분을 6500여억원에 팔았다.

서울증권 만도기계가 대표적
2005년 한국은행 부설 금융경제연구원은 해외 투기자본이 경제 불안정성을 키운다며, 투기자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는 앞서 언급한 서울증권, 만도기계가 대표적인 ‘투기자본 피해사례’로 나와 있다.

르노삼성차는 거의 매해 이익을 내지 못하면서도 로열티(기술사용료)와 배당금을 꾸준히 챙겨 노조로부터 ‘먹튀’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00년 2090억원에 삼성차를 인수한 르노는 이후 12년간 로열티와 배당금으로 5541억원을 가져갔다. 하지만 르노는 삼성차 시절 생긴 부채 4610억원 중 아직 2844억원을 채권단에 갚지 않고 있다. 삼성차를 인수할 때 이익이 나는 해에만 부채를 갚도록 계약했기 때문이다. 현재 르노삼성은 4500여명의 임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쌍용자동차 사례는 ‘실패한 먹튀’다. 1999년 대우그룹에서 분리된 쌍용차는 수년간 채권단 관리를 거쳐 2005년 중국의 국영기업인 상하이차에 인수됐다. 상하이차가 쌍용차를 인수한 직후, 쌍용차의 고유 기술이 상하이차에 헐값 매각됐다는 의혹에 시달렸다. 2009년에 상하이차는 경영 정상화를 이유로 2600여명의 노동자를 해고했다. 상하이차는 투자금 6000억원을 제대로 회수하지도 못한 채 쌍용차를 법정관리에 넘기고 한국을 떠났다. 현재 쌍용자동차는 법정관리를 거쳐 인도 기업인 마힌드라에 넘어갔지만, 그동안 22명의 노조원과 가족이 생계 등을 이유로 목숨을 끊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