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롬니 펀드, 미국 이어 한국서도 먹튀 논란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미트 롬니(65)가 창립한 사모펀드 베인캐피털(Bain Capital)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민주당 대선후보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51)은 “롬니는 뱀파이어”라며, 베인캐피털이 일자리를 줄이고 이익만 챙기는 먹튀 행보를 해왔다고 비판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롬니 펀드’가 소유한 부품업체가 6년간 수백억원을 번 뒤 인건비가 싼 중국으로 생산설비를 옮기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이다. 이 업체의 한국 공장도 원래 미국 공장의 설비를 가져온 것으로 드러났다.

2003년 3월, 텍사스 인스트루먼츠(Texas Instruments) 충북 진천공장 노동자 6명과 팀장 1명은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진천공장은 텍사스 인스트루먼츠의 센서·제어장치 부서의 한국 지사였다. 진천공장에선 주로 자동차와 가전제품에 들어갈 부품을 생산했다.

충북 진천 센싸타 공장의 내부 모습. | 백철 기자

한국인 7명이 미국에 간 이유는 ‘교육’ 때문이다. 미국 현지 공장의 시설이 충북 진천으로 이동해올 것이기 때문에 사전 교육을 받는다는 명목이었다. 한국인 노동자들은 미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시 인근에 위치한 애틀버러의 텍사스 인스트루먼츠 센서·제어장치 본사에 도착했다. 한국 입장에서는 ‘외자유치’, 미국 입장에서는 ‘자본유출’이 일어난 것이다.

당시 애틀버러에는 미국인 노동자 200명가량이 근무하고 있었다. 한국인 팀장은 한국인 노동자들에게 “미국에 있는 5개의 생산라인을 모두 한국으로 가져올 것이다. 하지만 미국 사람들에게 얘기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당시 교육에 참가했던 김명희 금속노조 센싸타지회 부지회장은 “당시 미국 노동자들은 1개 라인만 한국으로 나간다고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5개 라인 전부가 나간다는 사실을 말하면 분란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위에서 입조심을 시켰다”고 말했다.

베인캐피털 접수이후 근무조건 악화
한국과 미국 노동자들은 한동안 잘 어울렸다. 미국인 노동자들은 1 대 1로 한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기계 다루는 법과 작업 요령을 알려줬다. 50대 이상이 많았던 미국인 노동자들은 30대 초·중반이었던 한국인 노동자들을 조카나 동생처럼 친절하게 대해줬다. 하지만 한국인 노동자들은 애틀버러의 5개 생산라인 전체가 한국으로 올 것이라는 말은 끝내 전하지 못했다.

한국인 노동자들이 미국에 도착한 지 채 한 달이 되지 못한 어느날, 미국인 관리자가 이제 막 출근한 한국인 노동자들을 찾았다. 그는 한국인 노동자들에게 “공장 한구석에 피신해 있으라”고 말했다. 전날 저녁 지역 뉴스에 텍사스 인스트루먼츠가 애틀버러에 있는 5개 생산라인 전체를 한국으로 옮길 것이라는 내용이 방송됐기 때문이다.

전날 야간근무를 하던 미국인 노동자들은 방송을 보고 분노했다. 이들은 텍사스 인스트루먼츠 본사 측으로부터 “1개 라인만 한국으로 이동할 것이고, 고용안정에는 문제가 없다”는 통보를 받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5개 라인이 전부 한국으로 떠나버리면 고용문제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미국인 노동자들은 작업을 중지하고 단체행동에 나섰다.

김명희 부지회장은 “당시 미국인 관리자들은 미국인 노동자들의 행동을 ‘폭동’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미국인 노동자들은 공장 문을 봉쇄한 것도 아니었다. 이들은 작업을 멈추고 회사 관리자들에게 집단으로 불만을 표시하는 정도였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김 부지회장은 “사측에서 열심히 설득을 했는지 정확한 사정은 모르지만 며칠 못가 미국인 노동자들은 작업에 복귀했다”고 덧붙였다.

김은미 금속노조 센싸타지회장이 조합원들에게 교섭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 백철 기자

이 일이 있은 후부터 한국인 노동자들과 미국인 노동자들의 사이는 어색해졌다. 김 부지회장은 “애초 미국인 노동자들과는 서로 인사도 건네고 동료처럼 일하던 사이였다. 그런데 뉴스가 나간 이후에는 서로 대화도 끊겼고, 우리를 쳐다보는 미국인 노동자들의 눈빛도 달라 보였다”고 말했다. 자연히 한국인 노동자들은 미국인 노동자들을 조심스레 대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시각 한국의 진천공장에선 신관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2003년 8월 진천공장 신관이 완성됐고, 미국에서 들여온 5개의 생산라인에서 곧바로 작업이 시작됐다.

2006년 텍사스 인스트루먼츠는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인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설립한 베인캐피털에 센서·제어장치 부서를 30억 달러에 매각했다. 이 부서는 센싸타 테크놀러지스(Sensata Technologies)라는 독립회사로 새롭게 출범했다. 텍사스 인스트루먼츠 진천공장도 센싸타코리아 진천공장이 됐다.

센싸타코리아 진천공장 노동자들은 하나같이 “베인캐피털이 들어온 이후 여러 가지 근무조건이 악화됐다”고 말했다. 금속노조 센싸타지회 측에 따르면, 공장이 확장된 2003년께 진천공장에서 일한 노동자의 수는 약 400명이다. 그런데 베인캐피털이 들어온 이후인 2007년부터 3년간 4차례에 걸쳐 희망퇴직이 실시됐고, 2012년 현재 진천공장에는 190여명의 노동자들이 남아 있다.

이번에는 중국으로 이전할 차례
줄어든 노동자 숫자는 늘어난 노동시간으로 돌아왔다. 한 생산직 노동자는 올 6월 한 달 동안 228시간을 초과근무했다. 주중에 8시간씩 근무한 뒤 하루 평균 추가로 7시간을 더 일한 셈이다. 이 노동자의 월간 근무시간을 모두 합치면 386시간으로, OECD 국가의 월평균 노동시간인 146시간의 2.5배를 넘었다.

김은미 금속노조 센싸타지회장은 “텍사스 인스트루먼츠에서 센싸타로 이름이 바뀌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희망퇴직은 실시됐지만 신규 채용은 거의 없었고, 회사가 힘들다는 이유로 겨울에 뜨거운 물도 끊고, 화장실 핸드타월도 없앴다”고 말했다. 실제 센싸타코리아는 희망퇴직을 할 정도로 ‘긴박한 경영상의 사정’에 직면해 있었을까. 베인캐피털이 들어온 2006년부터 센싸타코리아는 매년 100억원가량의 순이익을 남겼다. 2006년부터 5년간 센싸타코리아가 거둔 순이익은 총 840여억원이었다. 2011년의 당기순이익은 130억원으로 2010년의 228억원보다 98억원이 줄어들었지만, 이는 매출원가가 전년 대비 500억원 상승한 결과였다. 2011년 말 현재 센싸타코리아의 이익잉여금은 총 784억3745만원이다.

김은미 지회장은 “노조가 없었을 때는 금융감독원을 통해 회사의 회계장부를 볼 수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지냈다. 회사에서는 ‘사정이 어려우니 이해해달라’고 말했고, 우리는 그 말을 믿고 주말까지 반납해가며 공장에 나왔다”고 말했다.

희망퇴직은 2009년에 중지됐지만 ‘자본유출’이 시작됐다. 이번엔 한국의 생산라인이 중국으로 나갈 차례다. 2011년 12월 센싸타코리아 사측은 노동자들에게 일부 생산라인을 중국으로 옮기는 대신, 잉여인력은 다른 생산라인으로 옮겨 고용관계를 유지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올해 1월에는 마샤 설리번 센싸타글로벌 CEO가, 3월에는 밥 샴바오 센싸타글로벌 생산총괄이사가 직접 한국을 방문해 사측의 설명을 확인해줬다. 이들은 구체적인 인력이동 방안은 6월 말에 발표할 것이라고 노동자들에게 말했다.

올해 4월에는 중국인 노동자 22명이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진천공장으로 들어왔다. 김명희 센싸타 부지회장은 “처음에는 글로벌 CEO까지 한국을 찾아와 고용승계를 하겠다고 해서 믿고 중국인들을 잘 챙겨줬다. 한국인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작업 후에 저녁도 먹고 술도 먹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측이 약속한 6월 말에도 구체적인 인력이동 계획은 나오지 않았다. 김은미 지회장은 “노조를 만들기 전에는 밝은직장협의회(일종의 노사협의회)에서 사측과 대화를 나눴다. 7월 11일 사측은 아직 인력계획을 정하지 못했으니 8월까지 기다리라고 했다”고 말했다.

베인캐피털 본사가 위치한 보스턴의 존 핸콕 타워 전경. 베인캐피털은 이 건물의 36~43층을 사용하고 있다. | 위키백과

사측의 행동에 신뢰를 잃은 센싸타코리아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결성에 뜻을 모았다. 센싸타코리아 노동자들은 7월 초에 먼저 금속노조 충북지부에 노조 설립을 도와달라고 연락했다. 한 달여의 준비 끝에 8월 5일 금속노조 센싸타지회 설립이 선포됐고, 조합원 총회가 열렸다. 190여명의 노동자 중 일부 사무직을 제외한 대부분이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한국에 있었던 22명의 중국인 노동자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한 조합원은 중국어 통역 담당자의 말을 전했다. “한국인들이 노조를 만들고 회사 관리자들에게 항의하러 다니는 모습을 본 중국인 노동자들이 불안해했다. 혹시라도 노조원들이 자신들에게 위해를 가할까봐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노조 세우고 투쟁 나선 것은 사주 책임
이후 진행에 상황은 한진중공업, 유성기업, SJM 등에서 벌어진 것과 유사하다. 사측은 노조 설립 이후 갑자기 예정에 없던 희망퇴직을 공고했다. 6월 20일 신규채용을 공고한 지 한 달 반이 지난 시점이었다. 센싸타코리아에 잉여인력이 많아서 희망퇴직을 한 것인지, 노조를 공격하기 위한 목적의 희망퇴직인지 물었지만, 사측 관계자는 “본사와 연락을 취해본 뒤 답변을 주겠다”고 말했다.

8월 23일 조합원들은 사측에서 용역경비업체와 계약을 맺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튿날에는 2008년 알리안츠생명 파업사태 때 용역경비업체를 동원해 노동자들을 해고시킨 전력이 있는 이상돈 인사노무 이사가 갑자기 센싸타코리아에 채용됐다. 1차 교섭일로 확정된 8월 30일을 앞두고 미국 본사에서 온 장비해체 기술자들이 한국을 찾았다. 용역들이 곧 현장에 투입될 것이라는 소식도 돌았다. 조합원들은 금요일인 24일부터 2박3일간 공장 앞에 천막을 치고 장비해체 기술자들과 용역들이 공장에 접근하는 것을 막았다.

8월 27일 고용노동부의 중재로 노사는 극적인 합의를 봤다. 8월 29일부터 교섭이 시작됐고, 사측은 최소 3개월간 설비반출을 중단하고 대화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성세경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조직부장은 “다른 금속노조 분쟁사업장과 달리 센싸타코리아는 원래 노사관계가 아주 좋고, 사무직과 생산직도 서로 동료의식으로 어울리는 곳이었다. 지금처럼 노동자들이 노조를 세우고 투쟁에 나선 것은 사측의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한편, 센싸타코리아 측은 “본사에 통보하지 않고서는 미디어 컨택트(언론 접촉)를 할 수가 없다. 노조와의 교섭과정에서 서로 나눈 이야기는 노조를 통해서도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본사와 접촉해본 뒤 이메일을 통해 우리의 입장을 밝히겠다”고 전했다.

미국에 남아있는 센싸타 공장에서도 ‘먹튀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독립언론사인 인디즈타임스는 8월 22일 센싸타가 소유한 일리노이주의 프리포트3 공장의 사례를 소개했다.

기사에 따르면, 프리포트3 공장은 내년 초 중국으로 이전할 예정이다. 이곳에서 일하던 170명의 미국인 노동자들은 11월에 실직상태가 된다. 미국 센싸타 노동자들은 아이오와 주와 위스콘신 주에 위치한 미트 롬니 사무실을 찾아 일자리를 지켜달라는 취지의 청원서를 제출했다.

미국 센싸타 노동자들은 플로리다주 탬파에서 8월 29일부터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롬니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미트 롬니 측은 노동자들의 청원서에 반응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롬니 펀드와 베인캐피털

베인캐피털은 1984년 컨설턴트 빌 베인(75)과 미트 롬니가 설립한 사모펀드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BCG) 부회장 출신인 빌 베인(75)은 1973년 BCG를 떠나 독립적인 컨설팅 회사인 베인 앤드 컴퍼니를 차렸다. 베인 앤드 컴퍼니의 고객 중에는 센싸타의 전신인 텍사스 인스트루먼츠도 포함돼 있었다. BCG의 컨설턴트였던 롬니는 30세가 된 1977년 BCG를 떠나 베인 앤드 컴퍼니에 합류했다.

베인 앤드 컴퍼니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롬니는 1983년 자신만의 독립적인 회사를 차리려 했으나, 빌 베인의 권유로 이듬해 베인캐피털을 세우고 CEO가 된다. 1년 만에 롬니는 3700만 달러의 자금을 모으는 데 성공한다.

이후 롬니는 베인캐피털과 베인 앤드 컴퍼니를 오가며 활약하다가 정치 입문을 위해 1999년 베인캐피털을 떠나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가 공식적으로 퇴사한 것은 2002년의 일이다. 2003년 매사추세츠 주지사에 당선된 롬니는 1984년 베인캐피털 창립에 공이 있는 에릭 크리스를 행정·금융 주장관에 임명하기도 했다.

롬니의 지지자들은 롬니가 회사를 떠난 2002년 이후 베인캐피털의 행적을 가지고 롬니를 비판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말한다. 반면, 비판자들은 롬니가 베인 앤드 컴퍼니 시절부터 25년간 책임있는 자리에 있었을 뿐 아니라, 베인캐피털을 창립한 장본인이기 때문에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본다.

<충북 진천/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