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안-박 정면대결 총성 울렸다

안철수 원장 측 ‘대선 불출마 종용’ 사건 계기로 사실상 박근혜 후보에 도전장

드디어 큰 싸움이 시작됐다. 대선후보 지지율에서 양강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피할 수 없는 대결을 시작했다. 특히 안철수 원장은 민주통합당과 연대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올해 대선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안철수-민주당 연합군’의 대결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측 금태섭 변호사가 9월 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안철수 원장 측 금태섭 변호사는 9월 6일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 9월 4일 오전 7시 57분께 새누리당 대선기획단 정준길 공보위원의 전화를 받았다”며 “(안 원장이 대선에 출마할 경우) 뇌물과 여자문제를 폭로하겠다며 대선 불출마를 종용했다”고 폭로했다. 금 변호사는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이 이렇게 하는 것은 차마 상상하기 어려운 일로, 민주주의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자 새로운 변화를 바라는 국민에 대한 협박”이라며 “중대한 범죄행위이자 우리 국민의 변화 열망을 구시대의 낡은 방식으로 짓밟은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는 “안철수 원장에게 확인한 결과 (협박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새누리당 대선기획단은 범죄사실에 대해 사전에 알고 있었는지 공식적으로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박 후보 공격은 출마 결심의 표현?
정 위원이 금 변호사에게 안 원장과 관련해 폭로하겠다는 내용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안랩 설립 초창기인 1999년 산업은행으로부터 투자를 받는 과정에서 당시 투자팀장인 강모씨에게 (안랩이) 주식 뇌물을 공여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안철수 원장이 서울 목동에 거주하는 음대 출신의 30대 여성과 최근까지 사귀고 있었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정준길 공보위원은 “친구 사이의 대화를 두고 협박이다, 불출마 종용이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너무한 것이고 과장된 얘기”라고 반박했다. 정 위원은 새누리당 대선기획단 공보위원직 사의를 표명했다.

금태섭 변호사와 정준길 공보위원은 서울법대 86학번 동기이고 모두 검사 출신이다. 현재 새누리당 서울 광진을 당협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 위원은 검사 시절인 지난 2001년 ‘패스21’이라는 벤처기업의 주가조작 사건을 수사했다. 그는 당시 수사과정에서 벤처기업들과 산업은행 간의 부적절한 관계를 파악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안팎에서는 그가 대선기획단 공보위원으로 임명될 때부터 ‘안철수 저격수’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안철수 원장은 이번 기자회견을 계기로 사실상 대선에 뛰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정치권과 거리를 둔 안 원장이 박근혜 후보에 대한 공격에 나선 것 자체가 출마를 결심하지 않고서는 설명하기 힘든 대목이기 때문이다. 사실 안 원장 측이 적극적으로 기자회견을 연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동안 안 원장 측은 짧은 보도자료나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안 원장의 행보를 전달했다. 안 원장에 대한 네거티브와 관련해서는 페이스북에 ‘진실의 친구들’이라는 페이지를 개설해 대응해 왔다.

또한 안철수 원장이 박근혜 후보 측의 협박 및 사찰 의혹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주장한 것은 앞으로 검증공세에 정면으로 대응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안 원장은 그동안 보수진영과 일부 언론의 각종 검증공세에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했으나, 대응방향을 적극적 대응으로 수정한 것으로 읽힌다. 만약 줄기차게 제기되는 검증공세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을 경우 의혹만 키우고, 추가적인 검증공세가 계속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 안철수 원장이 박근혜 후보를 정면으로 겨냥한 것은 최근 정체 또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안 원장의 지지율을 상승세로 반전시키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실제로 안 원장과 관련, 룸살롱 문제, ‘딱지 아파트 매입’ 의혹, 포스코 사외이사 시절 행보 논란이 이어지면서 대선후보 지지율이 점점 하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금태섭 변호사의 폭로는 국면전환을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에 따르면 안 원장은 대담집 출간과 SBS ‘힐링캠프’ 출연 영향으로 7월 넷째주 다자대결에서 지지율 31.7%를 기록했으나 그 이후 꾸준히 하락해 8월 다섯째주 조사에서는 27.0%를 나타냈다.

안철수-민주당 확실한 공조 계기 마련
안철수 원장과 박근혜 후보 간의 대립구도가 짜여진 가운데 민주통합당은 안 원장을 측면지원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이번 대선은 박근혜 후보 대 ‘안철수-민주당 연대’의 대결로 전선이 형성됐다. 민주당과 안철수 원장의 연결고리는 송호창 의원 등 시민단체 출신 의원들이 맡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민주당 안팎의 전망이다.

정준길 새누리당 대선기획단 공보위원이 9월 6일 국회 정론관에서 안철수 원장 측 금태섭 변호사의 주장을 반박하는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서성일 기자

시민단체 출신 의원들은 민주당 혁신과 범야권의 대선 승리 방안의 일환으로 안철수 원장과 연대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송호창 의원은 금태섭 변호사의 기자회견장에 참석하기도 했다. 송 의원은 민간인 불법사찰 진상조사특위 민주당 의원 자격으로 이 자리에 참석했다고 밝혔으나, 민주당과 안철수 원장 측의 메신저 역할을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송 의원은 이 자리에서 “(박근혜 후보가) 최근 이명박 대통령과 2시간 동안 가진 독대에서 이런 내용이 오갔는지, 알고 있는지 분명히 직접 해명하지 않으면 박 후보가 국민의 통합을 외치는 지도자로서의 모습이 전혀 아니라고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총선에서 고 김근태 전 의원의 부인인 인재근 의원과 함께 안철수 원장으로부터 지지 메시지를 받았다. 그는 안철수 원장의 공개지지로 경기 의왕·과천에서 당선됐다.

민주당도 당 차원에서 안철수 원장을 적극 돕고 있다. 민주당은 이번 사건을 ‘총체적 국기문란사태’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진상조사특위를 구성했다. 민주당은 박영선 법사위원장 등 민주당 인사들과 안철수 원장이 불법사찰의 피해자라는 공동인식을 함으로써 대선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측과 전선을 선명히 하겠다는 의도를 보인 것이다.

즉 민주당으로서는 불법사찰 조사를 계기로 안철수 원장과 ‘반박근혜 연대’를 결성하고, 여세를 몰아 후보단일화까지 연결시키자는 복안을 갖고 있다. 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원장 간의 후보단일화를 성사시키고 패하는 쪽이 선대위원장 등을 맡으면 대선에서 ‘찰떡 공조’가 될 수 있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이번 사건으로 민주당과 안철수 원장이 확실히 공조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 같다”며 “대선 후보 단일화에서 누가 승리하든 지는 쪽이 이기는 쪽을 도울 수 있기 때문에 시너지 효과가 상당히 클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민주당 일각에서는 ‘박근혜-안철수’ 대결구도가 부각됨에 따라 민주당 후보들의 존재감이 점점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