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현대차, 누구를 위한 정규직 전환인가

사내하도급 근로자 3000명 채용안 비정규직지회가 거부하는 이유는

울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는 변변한 조합 사무실이 없다. 정규직 노조인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지부 건물 출입문에서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 사이에 있는 공간을 사무실 대용으로 쓴다. 조합 간부들은 모두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해고된 이들이다.

지난 20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본관 입구에서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과 회사 관리자들이 대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신규채용 형식으로 근속연수 미반영
비정규직지회 우상수 사무차장은 다른 동료들과 함께 2주째 집에 들어가지 않고 이곳을 지키고 있다. 그는 2004년 5월에 입사했다. 3개월 동안 단기간 아르바이트로 일하다 그해 9월부터는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로 일했다. 그는 2010년 9월, 현대차가 투싼 생산을 중단하면서 일자리를 잃었다. 만성적인 고용불안 위협에 노출돼 있는 비정규직들에게는 흔한 일이다.

정규직이 될 가능성도 있었다. 2010년 7월 대법원은 2005년 현대차 하청업체 해고자 최병승씨가 제기한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에 대해 ‘2년 이상 근무한 사내하청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한다’며 고등법원 판결을 뒤집었다. 고등법원은 재심을 통해 같은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현대차는 재항고했지만, 대법원은 지난 2월 최종 판결에서 다시 한 번 같은 결론을 내렸다. 2년 이상 근무한 사내하청 비정규직은 현대차가 직접 고용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5월에는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최씨의 해고가 부당해고에 해당해 복직 대상이라고 인정했다. 소송 당사자는 최병승씨 개인이지만 판결 취지를 보면, 현대차의 다른 비정규직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현대차는 지난 6월 또다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처럼 불법파견은 물론이고 정규직 전환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해오던 현대차가 최근 달라진 태도를 보였다. 지난 8월 16일 “사내하도급 근로자 6800명 중 3000여명을 2016년까지 단계적으로 정규직화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현대차의 이 같은 정규직화 방침은 비정규직지회가 지난 10일부터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전원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파업을 벌이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비정규직지회는 이를 ‘쓰레기안’이라고 비판한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은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오랫동안 요구해온 것이었다. 비정규직지회가 현대차의 제안을 거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2010년 11월 29일,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점거 농성중인 울산 현대차 공장 정문에 컨테이너 차단벽이 설치돼 있다.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지난 2004년 노동부가 현대차 사내하청의 불법성을 인정한 이래 사내하청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투쟁해 왔다. | 정원식 기자

우선 비정규직지회는 대법원과 중앙노동위원회에서 현대차 사내하청을 불법파견이라고 판단했으므로, 파견법에 따라 2년 이상 사내하청 노동자로 근무한 이들은 현대차가 전원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고 본다. 반면 현대차가 내놓은 ‘3000명의 단계적 정규직화’는 ‘신규채용’이라는 단서를 달고 있다. 기존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신규채용 형식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인데, 이럴 경우 그 이전까지의 근속연수가 반영되지 않는다. 또한 현대차는 현재 정규직과 사내하청노동자의 업무를 분리할 계획이다. 현대차는 지금까지는 정규직과 하청노동자가 섞여서 일을 해왔기 때문에 불법파견 문제가 발생했다. 업무를 분리해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공정을 사내하청 관리자들이 담당하게 하면 ‘불법파견’이 아니라 ‘합법도급’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게 회사측 입장이다.

권영국 변호사(민변 노동위원회)는 현대차의 꼼수라고 말했다. “기존에는 라인 오른쪽에서는 정규직이, 왼쪽에서는 하청노동자가 일하는 형태로 되어 있어 누가 봐도 불법파견이었다. 이걸 분리해서 불법 소지를 털겠다는 것인데, 자동차 생산공정의 업무특성상 분리한다는 게 불가능하다. 콘베이어 시스템에서는 한 부문의 공정이 멈추면 다른 부문의 공정도 멈춘다. 사내하청 관리자가 하청노동자들의 관리를 직접 지휘·감독한다는 게 불가능하다.”

이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전화통화에서 “법적으로 명확한 판단이 나온 게 아니다. 최병승 소송은 최병승씨, 최병승씨가 소속돼 있던 하청기업, 그리고 현대자동차 3자간의 사안일 뿐 노동계에서 주장하듯 다른 사내하청 노동자 전부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비정규직지회 간부 폭행으로 상황 악화
비정규직지회는 회사측이 정규직으로 바꾸겠다는 3000여명은 어차피 정년퇴직 등으로 발생하는 인력 자연감소분이라고 주장한다. 이 자리를 신입사원 채용 대신 불법파견으로 사용해온 노동자들로 채우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한 비정규직지회 입장에서는 선별적인 정규직 전환을 받아들일 명분이 없다. 우상수 사무차장은 “비정규직 8000여명 중 3000명만 정규직으로 하고 나머지 5000여명은 영원히 하청노동자로 살라는 것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나”라고 말했다.

지난 8월 18일 비정규직지회 간부 4명이 폭행당한 사건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비정규직지회 주장에 따르면 이들은 당일 새벽과 오후에 현대차 보안요원과 용역경비들에 의해 공장 안에서 밖으로 강제로 내쫓기는 과정에서 폭행을 당했다. 회사는 사건이 알려진 직후 ‘불법점거가 우려돼 노조원을 공장 밖으로 내보냈을 뿐 폭력은 쓰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20일 정규직노조와의 임협에서 사과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 관계자는 “유감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이와 별도로 20일 발생한 노사 충돌 과정에서 사측 직원들이 다친 부분에 대해 비정규직지회 조합원 26명을 경찰에 고소했다.

사측이 비정규직 노조원들을 폭행한 것으로 알려져 물의가 빚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울산공장에서는 비정규직지회의 공장 점거 파업 당시인 2010년 11월과 12월에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관리자들에게 폭행당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적이 있다.

비정규직지회는 현대차의 3000명 정규직 전환안과 노조원 폭행을 임박한 사법처리 가능성에 대한 회사 나름의 자구책이라고 본다. 울산고용노동지청은 지난 21일 “전국금속노조와 현대차비정규직지회가 현대차를 파견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며 현대차 임원 소환조사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미 96개 하청업체와 노동자에 대한 조사는 마친 상태다. 김상록 비정규직지회 정책부장은 “울산고용노동지청 결과에 따라 현대차가 사법처리될 가능성이 높다. 회사가 3000명 채용안을 정규직노조와 합의안 형태로 타결함으로써 향후 사법처리가 되더라도 그 수위를 낮추고 다른 한편으로 노조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해 비정규직지회의 반발을 꺾으려고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에 대해 “울산노동지청에서 언제 소환조사를 할지 모르지만 조사를 하게 되면 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