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종교가 노동문제에 뛰어든 까닭은]조계종은 왜 노동문제에 뛰어 들었나

현실 속 ‘하화중생’ 여론 높자 노동위 발족… 극단 치닫는 노사문제 해법 제시할 듯

그동안 타 종교에 비해 사회문제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불교 조계종이 지난 8월 27일 노동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조계종 노동위원회에는 전·현직 민노총 인사들과 노동전문 변호사가 민간위원으로 참여했다. 노동위원회 위원들은 출범 직후 대한문 앞 쌍용차 분향소와 맞은편 재능교육 농성장을 방문했다. 종단 차원에서 노동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보인다. 조계종의 행보는 대책 없이 극한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정리해고와 노동탄압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 동력이 될 수 있을까. <주간경향>은 김현태 법보신문 기자의 글과 양한웅 노동위원회 집행위원장 인터뷰를 통해 조계종 노동위원회 출범의 배경과 맥락을 분석했다. 아울러 2008년 서울광장 시국미사 이후 우리 사회의 노동·환경·생태 관련 이슈의 현장에서 꾸준히 거리 미사를 이어오고 있는 천주교 사제들의 활동도 돌아봤다. <편집자 주>

조계종 노동위원회 위원들이 출범 직후 첫 번째 일정으로 8월 27일 대한문 앞 쌍용차 희생자 분향소를 찾아 기도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불교 첫 노동문제 전문기구인 조계종 노동위원회가 8월 27일 출범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노사갈등과 이로 인한 계층간 분열, 비정규직 차별문제 등 우리 사회의 최대 현안인 노동문제에 대해 불교적 해법과 대응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이 출범 목적이다.

조계종 노동위는 6인의 스님 위원 외에 5명의 노동문제 전문가를 민간위원으로 위촉했다. 유덕상 전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권승복 공무원노조 지도위원, 임두혁 전 금속노조 수석부위원장,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 백신옥 변호사 등이 대표적이다. 노동문제에 대한 조계종의 강한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스님 외에 노동 전문가도 참여
노동위는 출범과 동시에 서울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분향소를 방문한 데 이어 쌍용자동차범국민대책위와 만났다. 또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1700일이 넘게 농성 중인 전국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를 찾아 이야기를 들었으며, 8월 29일에는 조계종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가 정리해고 및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마련한 ‘노동자와 함께하는 시민초청 무차대회’에 참석해 우리 사회 노동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해결을 위한 노력을 약속했다.

조계종의 노동위 발족에 이은 사회적 약자를 향한 행보를 ‘파격’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특히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의 강한 의지가 반영됐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끌고 있다. 현재 조계종은 사회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승려 도박사건과 몰래카메라 사태로 촉발된 조계종 사태는 이후 각종 폭로가 이어지면서 총무원장 책임론에 이어 퇴진 논쟁으로까지 번졌다.

이런 이유로 이번 노동위 출범을 곱게 보지 않는 시각도 적지 않다. 불교계를 향한, 또는 총무원장 자승 스님을 향한 비판과 비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꺼내든 국면전환용 카드라는 것이다. 특히 2010년 3월 봉은사 직영사찰 전환과정에서 불거진 자승 스님과 정부·여당의 유착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한 행보라는 시각도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올 12월 대선을 앞두고 노동계를 불교가 끌어안아 차기 정부와의 관계에서 목소리를 키우기 위한 정치적인 함의가 담겨 있다는 해석까지 다양한 시각이 상존한다.

그러나 불교계 내부 시각은 다르다.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조계종의 역할론이 내부에서 끊임없이 제기돼 왔고, 올해 초부터는 노동위 출범을 포함한 다양한 방안들이 구체적으로 논의됐기 때문이다. 실제 조계종 총무원은 올 1월 신년기자회견에서 사회문제에 대한 불교적 대안 마련을 ‘2012년 핵심과제’로 발표했다. 당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잇따른 자살사건이 사회적인 이슈로 부각된 상황에서 조계종이 노동문제를 비롯한 사회문제에 일정 부분 목소리를 내겠다는 것을 명확히 한 것이다.

2010년 12월 16일 서울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조계종 화쟁위원회 위원장 도법 스님이 정부의 예산안 일방 처리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노동위원회 출범에는 2010년 발족한 화쟁위원회의 역할이 크다. | 연합뉴스

이후 조계종의 관심이 노동자 정리해고와 노사분규, 비정규직 문제 등으로 계속 이어지면서 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았다. 조계종이 사회문제에 대한 대안 마련을 2012년 핵심과제로 발표한 이후 종단 차원의 첫 행보는 지난 2월 서울 대한문 앞에서 연 쌍용차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천도재였다. 3월에는 조계종 화쟁위원장 도법 스님이 쌍용차 해고노동자 천막농성장을 방문해 노동자들을 격려했고, 당시 해고노동자들은 불교계의 관심과 도움을 호소했다. 불교계와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이런 만남은 총무원장 자승 스님 면담으로 이어졌다. 이날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은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불교계의 동참”을 호소했고, 자승 스님은 “노동문제를 전담할 전문기구 신설”을 약속했다. 이후 5월 초 ‘조계종 노동위 설치와 운영에 관한 령’을 입법예고 하는 등 노동위 발족을 위한 발판이 마련됐다.

‘도박 사건’ 등 이유로 곱잖은 시선도
이런 가운데 자승 스님은 5대 종교 대표들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쌍용차 사태를 계기로 종교계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데 적극 나서겠다는 뜻을 공표했다. 또 쌍용차 희생노동자를 위한 5대 종교 합동위령제를 열면서 노동자 문제에 대한 조계종의 행보는 진실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러나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터진 승려 도박사건과 몰래카메라 사태는 조계종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혔다. 일련의 사태를 책임지고 조계종 집행부 주요 스님들이 일괄 사퇴하면서 종단 행정업무에 공백이 생겼고, 노동위도 당초 예정보다 2개월여 늦은 8월 말 발족하게 된 것이다.

조계종 노동위는 노동과 관련된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들을 노동자의 입장에서 짚어보고 공론화를 통해 원만한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상설기구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불교계는 타 종교에 비해 사회적 문제에 대해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을 끊임없이 받아왔다. 개별 사안에 대해 성명을 내는 등 목소리를 내기는 했지만 그에 따른 대책 마련과 실천에는 뒷전이었다. 실천이나 구체적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불교계의 성명이나 주장은 의견 이상의 의미를 갖기 힘들었다.

특히 도법 스님, 수경 스님, 진관 스님 등 개인의 노력에 의해 환경과 인권 부문에서는 남다른 성과를 얻기도 했지만 종단이나 교단 차원의 힘을 이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더구나 노동문제에 대한 관심은 4대강 공사 반대와 같은 환경 이슈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조계종이 종단 차원에서 노동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에는 2010년 발족한 화쟁위원회의 역할이 크다. 특히 생명평화와 공동체운동에만 전념해온 도법 스님의 화쟁위 위원장 임명은 사회적 관심을 불러왔다. 또한 사회적 역할이 부족했던 총무원장 자승 스님의 적극적인 대(對)사회 행보를 예견케 했다.

화쟁위 출범 후 조계종은 4대강 개발을 비롯한 왕십리 재개발 갈등, 해군기지 건설로 인한 강정마을 사태,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의 한진중공업 사태 농성 등 극한의 갈등과 대립이 이어지는 현장을 방문해 대화와 토론을 통한 중재에 나섰다. 용산참사와 한진중공업, 쌍용차 사태로 구속 수감된 노동자들의 사면을 요구했고, 노동자에서 수배자 신분으로 전락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와 유성기업 노동자들에게 조계사 경내를 내주기도 했다. 이미 노동위 설립을 위한 내적인 분위기와 역량이 무르익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2010년 발족한 화쟁위원회 역할 커
8월 29일 조계사 앞마당에서는 처음으로 종단 차원의 노동자 무차대회가 열렸다. 민주노총 정의현 수석부위원장을 비롯해 정리해고 및 비정규직 노동자 200여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 이날 민주노총 정 부위원장은 “희망의 미래를 만들기 위해 온몸으로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손을 불교계가 잡아달라”고 호소했다.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노동자 무차대회를 시작으로 이제 불교는 노동자들과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며 자본과 노동문제에 대한 불교적 해법을 찾기 위해 쉼 없이 노력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렇다고 난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노동문제는 단기간 내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지속적 활동이 성패 여부를 좌우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조계종 노동위는 상설기구이면서도 종헌이나 종법으로 보장받지 못한 종령기구라는 한계를 안고 있다. 확대해석하면 행정수반이 바뀌면 사라질 수도 있다는 불안정성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노동위의 존속 여부는 앞으로의 활동과 성과에 달려 있다. 그리고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남은 임기 동안 종령기구인 노동위를 어떻게 종법기구로 끌어올리느냐도 진정성과 활동의 성패를 좌우하는 또다른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현태 <법보신문 기자> meopit@beop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