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어느 병사의 죽음은 ‘카파의 십자가’

‘어느 (공화파) 병사의 죽음’은 카파의 ‘출세작’인 동시에 평생을 따라다닌 ‘십자가’였다.

‘어느 (공화파) 병사의 죽음’은 로버트 카파(1913~1954)를 무명의 사진작가에서 종군 사진기자의 아이콘으로 끌어올린 그의 대표작이다. 그러나 전쟁 사진사에 한 획을 그은 이 사진을 둘러싸고 카파 생전은 물론 지금까지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카파는 생전에 문제의 사진 촬영 배경에 대해 말을 아꼈다. 카파 외의 많은 사람들은 이 사진에 대해 ‘조작이다’ ‘연출이다’ ‘타로의 사진이다’ 등의 주장을 펴기도 했다. 최근에는 일본의 논픽션 작가 사와키 고타로(澤木耕太郞)가 <카파의 십자가·キャバの十字架·2013>라는 책을 내놓았다. 학생 시절부터 카파에 심취해 있던 작가가 ‘어느 (공화파) 병사의 죽음’의 신빙성에 대한 의문을 가지면서 책은 시작된다.

스페인 내전(1936년 7월~1939년 3월) 발발 두 달째인 1936년 9월 초, 격전지인 코르도바 전선에서 한 병사가 날아오는 총탄에 맞아 쓰러지는 극적인 장면이 카파의 카메라에 포착됐다. 사진은 1936년 9월 23일 프랑스 잡지 <뷔>에 발표되었고, 다음해 <파리 수아르>와 <르가르>지에도 게재되었다.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지하1층). 8월 2일~10월 28일까지(휴관일 없음) 오전 10시30분~오후 9시까지. | 김문석 기자

그리고 그 사진은 1937년 7월 12일자 미국 잡지 <라이프>에 실린다. 라이프는 신생잡지(1936년 10월 창간)였지만 ‘총알이 머리를 관통하는 순간 쓰러지는 스페인 병사’라는 사진설명과 함께 실린 사진은 미국에서도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포토저널리즘 사상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이 사진은 미국 중산층 가정에 소개되던 일반적인 사진이 아니었다. 총에 맞은 한 젊은이의 죽는 순간을 담은, 전쟁의 참혹함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카파의 사진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촬영 당시 고작 스물셋이었던 카파는 이 사진으로 단번에 유명세를 탔다.

카파의 출세작, 논란 끊이질 않아
이 사진이 촬영되기까지의 과정을 추적하다보면 카파의 첫사랑 게르다 타로가 따라붙는다. 조국을 떠나 파리로 피신해온 카파는 첫사랑 타로를 만난다. 타로 역시 나치를 피해온 유태계 독일인이었다. 카파처럼 파시즘에 대항하다가 투옥생활을 했고 겨우 파리로 나왔다. 프랑스어는 물론 다른 외국어에도 능통했던 타로는 늘 활기찼고 카파의 어머니 줄리아 못지않게 매우 강한 여성이었다. 1935년 여름, 둘은 사랑에 빠진다. 에펠탑 근처에 아파트를 얻어 동거하면서 매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카파는 “내가 살면서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 없다. 타로와 나 사이를 가를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했을 정도였다.

스페인 민주당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타로는 스페인 내전(1936년 7월)이 일어나자 8월 카파와 함께 종군기자로 스페인에 가게 된다. 카파는 그녀에게 사진 찍는 법을 알려주었고, 그들은 한 팀이 되어 일했다. ‘카파와 타로가 찍은 사진’ 또는 로버트 카파의 이름으로 사진은 발표되었다. 1937년 7월, 마드리드 부근 부르네테에서 전투가 일어났고 타로는 카메라를 집어들고 나섰다. 장군은 타로에게 떠나라고 했지만 그녀는 거부했다. 병사들이 후퇴하기 시작했고, 폭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혼돈 속에서 타로는 아군의 탱크에 깔렸다. 다음날 아침 그녀는 죽었다. 신문을 집어든 카파는 ‘게르다 타로, 부르네테에서 죽다’라는 헤드라인을 보게 된다. 그때, 카파는 스페인 격전지에서 촬영한 필름을 넘기기 위해 파리에 와 있었다. 타로의 스물여섯 번째 생일날, 파리에서는 타로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어느 (공화파) 병사의 죽음. 스페인 코르도바. 1936년 9월 초.

‘어느 (공화파) 병사의 죽음’이 타로가 촬영한 사진일 수도 있다는 설이 제기되면서 암묵적으로 미루어 짐작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단정지을 순 없다. 타로는 스페인 내전 취재 중 사망했고 사진들은 카파의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카파와 타로의 사진을 검토한 스페인의 문화학자 카를로스 세라노는 “구분하기 힘든 사진들도 많다. 1937년까지 타로의 사진은 서명이 없이 카파의 이름으로 발표되었기 때문”이라며 ‘타로의 촬영설’에 대한 여지를 남기기도 했다. 또 스페인 바스코대학의 수스페레기 교수는 ‘어느 (공화파) 병사의 죽음’ 사진의 영상 분석을 통해 카파가 애용하던 라이카가 아닌 타로가 주로 들고 다닌 롤라이플렉스 카메라로 촬영했음을 밝혀냈다. 하지만 수스페레기 교수는 실력이 미진한 타로가 촬영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추측한다.

최근 일본에서 출간된 <카파의 십자가>에서 작가는 ‘타로의 촬영설’에 힘을 싣는다. 하지만 카파의 촬영인지 아닌지를 밝혀내어 진실의 여부를 찾는 것이 아니라 ‘어느 (공화파) 병사의 죽음’은 카파의 ‘출세작’인 동시에 평생을 따라다닌 ‘십자가’였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 작가는 “카파는 ‘어느 (공화파) 병사의 죽음’으로 위대한 전쟁사진가로 우뚝 선 후 전장에서 사라져간 타로의 삶을 이어받고, 진정한 전쟁사진작가로 거듭나기 위해 전장을 찾아다녔다”면서 “치열한 전투현장에서 촬영하기를 주장했던 카파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라는 또 하나의 걸출한 전쟁사진을 내놓으면서 그를 짓누르던 십자가(어느 공화파 병사의 죽음)를 내려놓았다”고 결론짓는다.

‘타로 촬영설’ ‘연출설’ 불구 카파정신은 영원
‘타로 촬영설’과 함께 ‘연출설’ 또한 끊이지 않는 논란거리다. 이 ‘사진의 주인공이 실제로 죽지 않았다’ ‘촬영된 지역에서는 전투가 없었다’ ‘병사는 카파에게 포즈를 취하다 총탄에 맞았다’ 등. 유명한 프랑스의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파트릭 죄디는 “스틸 이미지만으로는 사진 속 남성이 헛발을 딛고 미끄러진 것인지, 총에 맞아 죽어가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매그넘 기록보관소 소장을 지낸 사진작가 지미 팍스는 “사진에 의문점이 있다 하더라도 20세기 최대의 격동기를 생생하게 담아낸 카파의 사진에 대한 평가를 절하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카파는 연인이자 동료였던 타로의 죽음 후 스페인 전장으로 돌아가지 않고 지구 반대쪽 중국으로 날아가 중일전쟁을 취재한다. 타로를 잃은 상처를 어느 정도 극복한 카파는 다시 스페인 전장으로 돌아가 취재를 하고, 세계 2차대전의 한가운데를 누볐다. 그는 1954년 게르다 타로의 사진을 지갑 속에 품고 타로의 최후처럼 롤라이플렉스 카메라를 들고 취재 도중 지뢰를 밟아 죽음을 맞이한다.

카파를 최고의 전쟁사진작가 반열에 올린 사진, ‘어느 (공화파) 병사의 죽음’을 제외하고도 카파의 많은 사진들은 그의 정신을 대변하고 있다. 카파의 사진들을 보면 그가 총탄이 날아오는 속에서, 병사들의 비명이 난무하는 속에서도 꿋꿋하게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투철한 사진작가의 정신을 가리켜 ‘카파주의’(Capaism)라고 한다.

그는 여전히 종군기자의 전설이다. ‘자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라’는 카파의 가르침은 큰 울림이 되어 돌아온다.

이번 사진전에 내걸린 ‘어느 (공화파) 병사의 죽음’을 카파의 출세작이 아닌, 평생토록 전쟁사진을 찍는 데 몰입하게 한 ‘카파의 십자가’로 해석한다면 카파의 여정은 훨씬 실감나게 다가온다.

<김영남 출판기획위원 jacksim@kyunghyang.com>